시편 110편 | 김인섭 | 2023-1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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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0편 “주의 권능의 날에...”
이 시편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예언하는, ‘메시아 예언시’라고 불립니다. 이런 종류의 시가 시편에 모두 7편(2, 16, 22, 24, 45, 72, 110편)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 본문(110편)은 영원한 왕과 제사장이 되시는 메시아에 대해서 가장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전체에서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이 110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메시아의 왕 되심을 노래한 것은, 자기 위에 영원한 왕이 계심을 잊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은 부족하고 연약하며, 자신의 다스림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지만,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는 부족함이 없으시고, 강하시며, 그분의 다스림은 완전하며 한계가 없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왕이 아니라 진짜 왕은 따로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1절(상반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여기 ‘내 주’에서 ‘내’는 ‘다윗’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이며 영원히 현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주’는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편이 쓰여질 당시 사람들에게 ‘주’는 거의 수수께끼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주’는 종이 주인을 부를 때와 제자가 스승을 부를 때, 신하가 임금을 부를 때에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쓴 다윗은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이 ‘주’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약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주라고 부른다면, 그 상황은 굉장히 치욕적일 것입니다.
‘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아도나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해 놓고서도, 그 이름을 너무 거룩하게 여겨서 입으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주_아도나이’는 종과 제자, 신하가 자신의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왕인 다윗이 ‘주’라고 말함은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였으니,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내 주’는 ‘메시아’를 가키는 말입니다.
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고, “당신이 다윗의 자손인데, 당신의 조상인 다윗보다 더 높은 존재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왕이었음에도 그것으로 교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 됨보다 메시아의 왕 되심과 그분의 통치하심을 소망하였기에 이런 시를 지어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윗은 왕으로 군림하려고만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주신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도 신실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함과 사람들을 섬김에 샘플과도 같습니다.
오늘아침!! 자신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다윗처럼, 우리도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과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인정하는 삶을 살면서 나눔과 섬김의 삶을 다짐하며 묵상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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