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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5장 김인섭 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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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5장

 

 욥기 33장에서부터 시작된 엘리후의 변론이 본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엘리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소용없다’는 욥의 불평(34:9)과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욥의 말’에 대해 말한 것을 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소용없다’는 욥의 불평(34:9)을 말합니다. 첫 번째는 ‘범죄하나 의롭게 사나 차이가 없다’고 욥이 불평한다는 것입니다(35:3). 

 

 엘리후는 사람이 의로우나 범죄하나, 그것이 하나님께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1~8). 욥이 소송한다고 해서 하늘을 움직일 수 없으며, 하나님을 지상으로 임하게 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거대한 간격을 깨달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멀리 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엘리바스가 22장에서 말했던 것을 반복하지만, 엘리후는 하나님이 인격적이지 않으신 것처럼, 그리고 인생에게는 관심이 없는 분인 것처럼 말하는 오류에 빠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엘리후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욥의 말을 다루고 있습니다(9~14).

 

 엘리후는 하나님이 죄인들에게는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도가 진정한 기도가 아니며, 그들은 자기 욕심에 따라 구하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교만(12),내용 없는 공허한 부르짖음(13) 그리고 믿음의 부족(14)으로 인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세 친구들의 논리 주장들이 그랬듯이, 이 변론은 욥의 경우에 정확하게 대입할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자기 논리와 변론을 주장하면서, 그 변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욥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엘리후는 비록 앞의 세 친구보다는 더 지혜롭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예측 가능한 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어떻게 인간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욥의 고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에는 소망의 빛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기도는 어떠한 기도인가를 오늘 이 아침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를 지으신 하나님’,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는 “어디에 계시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10).

 

 밤처럼 다가오는 고통과 고난 중에서도 오히려 성도들은 찬송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를 힘든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시며 누구든지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응답받을 수 없는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헛된 부르짖음이라고 13절에 말씀합니다. 약 4:3절은 교훈하십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가 감히 예측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또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면서도 우리에게는 아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하며 감사하며 노래하게 지금의 환경과 조건의 수많은 고난과 어두움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귀한 시간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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