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3장 | 김인섭 | 2023-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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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장
오늘 본문은 엘리후의 첫 번째 변론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즉 욥이여”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 중에 그 누구도 욥을 향해 “욥이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당당하게 부릅니다. 이렇게 욥의 이름을 부름은 “내 이야기를 잘 들으시오”의 의미입니다.
엘리후는 자신과 욥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존재이고, 두 사람이 모두 흙으로 지음 받는 존재이니, 자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지금부터 우리 두 사람이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어봅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후의 욥을 향한 첫 번째 충고는 8-12절에 나옵니다. 엘리후는 욥을 욥의 친구들보다는 약간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각이거나, 욥이 공감하고 수긍할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논리적으로 포장하여 말하고, 좀 더 세련되게 꾸며서 말하는 것뿐입니다. 때론 어떠 논리보다 진실 된 말 한 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이어서 엘리후의 욥을 향한 두 번째 충고가 13-22절에 나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한 번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반복해서 말씀하시지만 사람이(욥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시는 지를 15-17절에서 말 하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꿈을 꿀 때나 환상을 볼 때뿐만 아니라 깊은 숙면을 취할 때에도 사람의 귀를 여셔서 말씀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교만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즉 “욥 당신이 잘 때에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지만 당신이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라고 면박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욥이 누구보다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는 것을 욥의 말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엘리후의 세 번째 충고는 23-2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천 천사 중에 한 천사를 보내어서, 그 천사를 통해서 도와주시고, 살려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 청년 때와 같이 젊음도 되찾고, 건강도 회복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회복되고 나면, 사람들 앞에서 “나는 죄를 지어서 옳은 일을 그르쳤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내 생명을 건져주셔서 빛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과도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어서 고통 속에 있는데, “더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나봐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적어도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옆에서는 그냥 말없이 함께 있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엘리후의 욥을 향한 마지막 네 번째 충고가 29-33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후는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잘 통과한 사람은 좋은 결과를 주시고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욥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보편적인 정답이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옳은 지적이라도 적절한 때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셔서 정죄하시거나, 회개하라고 호통을 치지 않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방문이 삭개오의 인생을 새롭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용납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곳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신실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을 말하기보다, 나와 함께 하게 하신 그 사람을 위해 기다려 주고, 기도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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