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 | 김인섭 | 2023-03-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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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9장
모든 고난은 의인에게도 임하고 악인에게도 임합니다. 단지 그 고난의 이유와 목적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분별력이 없이 고난의 현상만 보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또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다니엘은 의인으로서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총리로 있던 그가 왕의 어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엘리바스와 빌닷은 계속 욥을 공격하면서 그의 범죄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욥과의 대화를 통해 도무지 그들의 원하는 대로 욥은 말려들지 않습니다.
욥 자신도 가장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그 부분이었습니다. 차라리 자기 죄악의 결과였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될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런 엄청난 재난을 당할 정도로 큰 죄를 범한 사실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17-18)라고 탄식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의 고난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신학적인 고정관념이었고 오랫동안 이어 내려온 신학사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모든 고난은 악인에게만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정설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 정설은 예수님께서 깨뜨리셨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맹인된 자를 보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뉘 죄 때문입니까 자기니이까 부모니이까”.(요9:2)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유대세계에서 정설로 이어져 내려온 고정관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정설을 예수님께서 완전히 뒤집어 버리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당시 사회적인 인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움이 아니며 우리에게 영광이듯이, 우리에게 임한 고난도 절망이나 슬픔이 아니라 영광과 성장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롬8:18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 순간 욥은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회복과 승리를 위해 이런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힘과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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