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장 | 김인섭 | 2023-03-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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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장
자살을 결심하고 마포대교 위에서 울고 있던 어느 여학생을 한 여경의 재치 있는 설득으로 다시 살아나게 했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여경은 학생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 있니? 언니랑 같이 걸을까?".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울고 있던 학생에게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천금같이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의 마음을 돌이키게 했던 결정적인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너를 위해 울어줄 사람 한 명이면 돼~. 지금 이 힘든 문제도 금방 다 지나갈 거야".
힘들어 지쳐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약은 무엇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입니다. 이해하며 안아주고 격려해 주는 위로의 말 한마디는 죽을 것 같은 사람이라도 살려내는 힘이 되게 합니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되게 하고, 분별력이 떨어진 위로는 오히려 화를 돋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말로만 듣던 욥의 형편을 막상 직접 대면하고 나니 그 친구들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상이상의 끔찍한 재앙을 당한 욥의 몰골 때문입니다.
7일 동안을 같이 지내면서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할 정도(2:13)였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해 주어야 할지, 뭐라고 권면을 해야 할지 본인들도 암담하였습니다.
본문은 7일이 지난 후 엘리바스라는 친구가 가장 먼저 말문을 여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오히려 욥을 더욱 자극시키며 고통을 가중시키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은 그의 죄악의 결과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자기만의 신학으로 단정지어 버립니다.
“죄 없이 망한 자는 없으며 정직한 자가 끊어짐도 없다”는 논리로 비약시키면서 욥의 숨겨진 죄성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입니다.
한 마디의 위로라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엘리바스는 너무나 적나라하게 자기의 짧은 지식을 기준으로 욥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빗나간 지식이었고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자기 생각을 정당화시키려고 공격의 도구로 활용하지 마세요. 그로인하여 더욱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설령 그 판단이 옳았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입니다.
‘위로’는 세우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이고 살 소망을 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그 목적을 위해 소중하게 쓰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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