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편 | 김인섭 | 2023-05-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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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편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시편이 9편과 연결된 것이라면, 이 탄식은 다윗의 한숨입니다. “어찌하여?”는 다윗만이 내뱉는 탄식이 아니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사람들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왜?”라고 시작되는 기도를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립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우리의 기도에 “어찌하여?”나 “왜?”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때와 방법과 우리가 정한 때와 방법이 같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며, 우리가 가려는 길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진리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멀리 서 계시는 것 같고, 숨어 계시는 것처럼 여겨져서 삶과 신앙이 힘듦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맷돌은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표대로 돌아갑니다. 때로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곡물이 확실하게 잘 갈아져서 아주 고운 가루가 되듯이 우리의 삶에 확실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시편 10편을 비롯한 대부분의 탄원시는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이 활개를 치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짓누르는 것처럼 보여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같은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그 때에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오늘 본문 중에서 고르면, ‘어찌하여’입니다. 늘여서 표현하면 이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심에도 어찌하여 세상은 요 모양 요 꼴입니까?”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탄원은 마지막에는 감사와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찬양합니다.”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주님께서 보셨습니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탄원시는 “어찌하여?”에서 시작해서, “주님께서 보셨습니다.”로 끝이 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사이에 시인이 하나님을 직면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음이 힘들다면, 하나님을 직면함으로 의문이 감사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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