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편 | 김인섭 | 2023-05-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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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편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오늘 본문 시편 8편은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표제어가 붙여진 시편은 8편과 더불어 81편과 84편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깃딧’의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반주용 악기이거나 특정한 리듬을 지칭하는 말로 여겨집니다. 어떠하든지 간에 시편 8편은 굉장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오늘은 본문 1절만 보아도 다윗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높은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봄꽃이 만발한 들판을 걷거나, 곱게 단풍이 진 산길을 걸을 때, 그 광경을 보고서 그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고, 그 장관에 잠시 취할 수 있지만, 그런 자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에서 ‘아름답다’는 ‘위대합니다’ 또는 ‘장관(壯觀)입니다.’의 의미입니다. 즉 다윗은 주위 사방의 자연을 보고서 그 자연보다 훨씬 위대하시고, 장관인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깊이 경험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맛 본 사람은 자연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본래 목동이었습니다. 그가 양 떼를 돌볼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삶,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차기 왕으로 세울 가문을 사울의 집안이 아닌 이새의 집안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새의 집으로 차기 왕에게 기름을 붇기 위해서 사무엘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누가 기름부음의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모두 집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예외였습니다. 아버지가 생각해도 자기 아들 8명 중에서 첫째에서 일곱째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막내 다윗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목동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지, 깊은 감동이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이구아수나 나이아가라 같은 거대한 폭포가 있거나, 만리장성이나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장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그만큼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보여 지는 대로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온 세상 속에서 다윗에게 보였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이런 시편의 고백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은 결코 고백할 수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자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인,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며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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